"이회창 후보는 흠잡을 데 없이 정돈되고 소년 같은 피부를 지닌 깨 끗한 얼굴이지요. 좀 뾰족한 턱은 조명이나 카메라 앵글로 커버하면 좋겠고 눈썹에 좀 더 힘을 주면 카리스마가 살아날 것 같아요. 법관 출신다운 반듯한 이미지에 여백의 미를 주면 더욱 좋겠구요." "노무현 후보는 거친 광야를 달려온 사람의 이미지가 풍기지요. 피부 톤이 어둡고 얼굴이 매끈하지 않아 바위 같은 느낌을 줍니다. 이런 서민적인 느낌을 살리면서 이마의 깊은 주름을 조금 약하게 하고 입 술선을 선명하게 보완하는 게 좋지요." "정몽준 후보는 호남형으로 강렬한 인상을 줍니다. 붉은 기가 있는 피부 톤을 조금 정리하고 입술선을 선명하게 처리하고 충혈돼 보이는 눈에 신경을 쓰면 더욱 좋은 이미지를 줄 겁니다." 정치인 분장사 1호로 통하는 박수명 씨(64)가 말하는 대선 후보의 메 이크업 포인트다. 박씨는 한국의 웬만한 정치인은 거의 모두 그에게 얼굴을 맡겼다 할 정도로 정치인 분장의 대가로 통한다. 전두환ㆍ노태우ㆍ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 이인제ㆍ박찬종 ㆍ김윤환 씨 등이 그에게 얼굴을 맡겼던 이들. "보는 얼굴보다는 손 으로 더듬었을 때 얼굴을 기억한다"는 박씨는 "정치인 얼굴로는 이목 구비가 반듯한 얼굴이 좋은 얼굴"이라고 밝힌다. 70년대 초부터 30년 넘게 정치인 분장을 해온 그는 "잘 나가는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이마 가 반듯하고 머리통이 큰 게 특징"이라고 말한다. 박씨가 애초부터 정치인 분장을 했던 것은 아니다. 65년 KBS에서 시 작해 98년 MBC에서 퇴직할 때까지 그는 방송분장 분야를 개척하고 지 켜온 이다. 58년 연극 분장까지 올라가면 40여 년 동안 분장이라는 외길을 걸었다. 현재는 바림분장 대표로 한국예술종합학교 등에 출강 하고 있다. 그가 정치인 분장을 하게 된 계기는 70년대 초반 당시 외무부 장관으 로 있던 김용식 씨의 분장을 맡으면서. 흑백TV 시절이었던 당시는 아 나운서도 분장을 안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오랜 외국 생활을 한 김 장관은 TV 출연을 하며 박씨에게 "분 장을 꼭 해달라"고 부탁했다. 이후 헨리 키신저가 한국에 왔을 때도 분장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으 며 "정치인 분장이 필요한 분야가 되겠구나"싶었다고. 그리고 80년대 컬러TV 시대가 오며 정치인 분장은 필수가 되었다. 컬러TV 시대에 등 장한 전두환 대통령은 '대통령 메이크업'을 본격화한 주인공이다. 역대 대통령 얼굴을 자신의 손으로 다듬었던 박씨는 "전두환 전 대통 령은 머리숱이 없었다는 점만 빼면 나무랄 데 없는 얼굴이었다. 노태 우 전 대통령은 매서운 눈을 부드럽게 누그러뜨리는 데 신경을 썼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분장사로서 별로 신경 쓸 데가 없는 좋은 얼굴이 었고, 김대중 대통령 역시 참으로 잘 생긴 얼굴이었다"고 말한다. 정치인들로 하여금 분장에 신경쓰게 하는 원인은 TV다. TV토론 등 장 시간 얼굴이 클로즈업되는 프로그램은 물론이거니와 뉴스 카메라가 들이닥칠 사안이 있는 날이면 정치인들은 TV 화면에 잘 받기 위해 메 이크업을 하게 된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박씨는 TV 분장 전문가가 정치인 분장을 할 필요 가 있다고 강조한다. "TV는 작은 브라운관에 점으로 표시되는 매체입니다. 브라운관에 잘 나오기 위해서는 축소지향형 분장일 필요가 있어요. 또한 개인 캐릭 터를 살려낼 수 있는 캐릭터 분장이 되어야 합니다." 잘 생긴 정치인들일수록 분장을 잘 안하려 한다고. "김윤환 씨나 정몽준 씨 등이 대표적인 경우죠. 그런 분들의 요구는 늘 안한 듯 살짝이지요." <윤자경 기자 jkyoon@mk.co.kr>